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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 17 : 나의 군대 생활 4

인간의 삶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때까지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으로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도 있고 사소한 것도 있지만 나에게 닥친 그 사건들을 헤쳐나가는 데는 대부분 사람이 개입되는 것 같다. 일생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외모나 성격이나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군에서 만났던 특별했던  사람들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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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대장 

 

나는 단기복무 장교니까  같은 부대에서 소대장 2년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삼사나 육사출신, 또 근무를 몇 년 연장한 단기복무 장교들은 소대장을 1년만 하게 하고 보직을 참모로 바꾸어 주면서 타부대로 전출시킨다. 그래서 나는 복무 기간 중 우리 중대 같은 학군 출신 1명과는 같이 2년 소대장을 맡았지만 2년 동안 육사출신 두 명, 삼사출신 두  명의 소대장과 만나게 되었다.  

 

그중 우리 중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육사출신 1년 선후배 소위 2명이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소대장 1년 차 소위 때 같이 복무했던 소대장은 몸도 야리야리하고 성격도 유순해서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너무 유순하게 소대를 지휘한듯했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제대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았던 그 소대 내무반장 말년 하사가 자기 소대장을 만만히 보고 작지 않은 사건을 일으켰다. 한 밤에 소대장이 직접 중대 막사 앞에 소대원들을 집합시켰는데 이 하사가 전부 막사로 돌아가라고 소리쳐서 소대병사들만 우왕좌왕하던 사건이 있었다. 

사실 내무반장은. 소대장이 해야 할 많은 자잘한 일들을 소대장 대신 처리해 주므로  똑똑한 내무반장을 두고 있으면 소대지휘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그 소대에 소대장과 내무반장 사이에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나. 정당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군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의 하사는  체격도 아주 좋고 눈매도 날카롭고 한 성깔 하는 친구였는데 마침 그때 내가 중대 주번사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에 벌어진 그 사단의 전말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 하사를 따로 불러 좋은 말로 달래며 경고했다. '지금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내가 지금 소동을 다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우리 소대 문제니까  타 소대장인 나는 빠져달라는 것이다. 한번 더 강하게 경고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날밤 사건은 결국  그 상태로 소대장의 명령이 내무반장에게 막혀서 실행되지 못했다.

 

다음날 중대장과 4명의 소대장이 이 문제로 회의를 했다. 그 소대장은 "그냥 지나가면 소대를 지휘할 수가 없다. 하사를 영창에 보내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중대장과 다른 소대장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제대가 코앞이니 중대 내에서 근신시키면 안 되겠냐는 말까지 나왔다. 해당 소대장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고 나도 그 사태의 진행과정을 다 보았고 그 하사에게 경고까지 했으니 영창 보내야 한다고 동의했다.

 

중대장은 나에게 한 번 더 물었다. 나는 '이 사건을 대충 넘어가면 다음에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문제가 된다. 내가 사건을 직접 보았는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그 하사의 처지에서는 조금 안타깝지만 여기는 군대 아닌가?  영창 보내야 된다'. 고 했다.

다른 소대장들은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대장은' 박소위(나를 지칭함)가 저렇게 강경하니 영창 보내는 걸로 결정하자'하고는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그는 연대 영창을 일주일 갔다 왔다.  그는 그때부터 완전히 풀이 죽어 죽은 듯이 지내다가 제대했다. 

 

이 하사를 내가 제대 후 거의 10년 가까이 지나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길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동료와 같이 일 때문에 어디 가는 중이라 차 한잔할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때 그렇게 제대한 줄 알았는데 그 상태로 사회로 나가면 영창 기록이 사회생활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누군가가 그에게 일러 주었던 모양이다.  연장복무하면 그 영창기록을 없애준다는 조건으로 재입대해서 2년 동안 특전사에서 연장근무하고  제대했다고 한다.  제대 후 경찰에 들어가서 자기 적성에 맞는 강력반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특전사에 복무하면서 사회로 나가서 형사를 하는 것이 자기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 듯했다.

 

그를 영창 보내는데 내가 크게 일조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대화를 해보니 나에 대한 감정은 전혀 없어 보였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강력반 형사일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평범한 보병중대 생활을 마치고 특전사에서 2년을 빡세게 복무한 것이 자기 적성에 맞는 강력반 형사로 연결된 것 같아서 '세상일이라는 것이 앞날을 알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순하고 여리여리한 소위가 100킬로 행군할 때 엄청난 힘을 보여 주었다. 행군은  부대에서 아침을 일찍 먹고 출발하는데 도중에 점심과 석식을 먹게 되고, 50분간 행군뒤 10분간 휴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무거운 배낭에 소총 및 기타 공용화기들을 지니고 있으니 10분간 휴식 소리가 떨어지면 모두 그 자리에 전부 내려놓고 쉬는데 밤이 되면 그 10분 동안 쿨쿨 자는 병사들도 계속 늘어간다. 휴식 후 출발 시에는 소대장들이  소총을 위시한 모든 장비 확인을 빠르게 하고 다시 출발한다,

 

우리에게 두 번째 100킬로 행군이었던 걸로 생각되는데 이 친구가 육사가 어떤 군인을 만들어내는지를 몸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장교고 사병이고 모두가 너무 힘들어 휴식시간이 되면 배낭부터 벗어낸 후 배낭에 머리를 베고 눕기 바쁜데 이 친구는 20여 시간 행군 내내 쉬는 시간에도 배낭을 벗지 않은 것이었다. 벗는 대신 배낭을 멘 채로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식사까지도 배낭을 멘 채 했다. 전부 내심으로 엄청 놀랐다.

 

그의 후임으로 온  육사출신 소대장은 전임 선배와 달리 체격이나 생김새가 우락부락했는데 육사에서 럭비선수였다고 했다. 그런데 전임과 달리 행군에는 무척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행군 내내 몹시 힘들어했다. 전임이 남기고 간 육사출신 강철체력의 신화를 단숨에 깨뜨렸다.

 

이 친구는 툭하면 병사들을 두들겨 패서 우리가 걱정할 정도였다. 그 당시도 구타금지가 강조되고 있었고 병사들이 제대할 때 소원수리를 쓰는 제도가 있었다.  비록 글을 쓴 병사는 이미 제대했지만  사단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재발방지를 위해 조사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 그러다가 문제 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라고 하니까 "내가 군대 체질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전역하지요. 뭐" 하는 기상천외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 하사가 이 소대장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 후배 소대장은 당장 무지막지하게 주먹부터 날렸을 것이다.

 

운동을 한 친구답게 어떤 문제든  복잡하게 보지 않고 자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즉각 처리하는  장점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나도 이 친구에게 신세 진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중대장 하고  말다툼을 했었다. 중대장이 화를 벌컥 내며 나에게 상황판을 집어던지려고 할 때 내 옆에 앉아있던 그가 재빨리 일어나서 중대장을 꼼짝 못 하게 안아버리더니  '뭐해요. 박중위님. 빨리 튀어요'해서 도망쳤는데  사실 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내가 중대장에게 사과하고  중대장도 멋쩍게 웃으면서 사과를 받이 주었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반사행동이 즉각 나타나는 것이 행동이 느린 나하고는 많이 달랐다

 

6.   중대장

 

부대 처음 배치받았을 때 중대장도 육사출신 대위였는데 이 분도 10킬로 무장 구보 및 100킬로 행군을 힘들어했다. 병사들 앞에서는 티를 내지 못했으나 중대 복귀 후 중대장실에 가보면  많이 지쳐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육사출신 대위 중 일정기간 이상 (5년이었던 것 같다) 복무하고 전역신청서 내면 공무원 3급으로 특별채용한다는 공고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숫자는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 해만 딱 한번 그런 기회가 있고 다시는 없을 거라는 공지였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 지원을 하는 것이 나은지 아닌지 그의 고민을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우리 소대장들이 조언해 줄 입장이 아닌 것을 알고, 자기 밑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사회로 나간 , 학군출신 소대장 둘을  중대로 면회 오라고 불러서 심각하게 1시간 정도 그 건에 대하여 대화를 했다. 당시 우리 부대는 상시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중대장은 서울로 나가서 이 문제를 상의할 만한 지인을 만날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

 

자기는 군에 계속 남아 근무하면 장군이 될 확률은  낮지만 아마 대령까지는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 계속 군 생활 계속하느냐? 아니면  3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느냐? 어떤 게 현명한 결정일까?를 물었다.   

중대장의 고민은 일반인은 행정고시를 통과해야 받을 수 있는 3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육사부터 시작해서 계속 군생활만 해온 자신이 혹시 공무원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들은 당연히 사회 진출을 권하였다.

 

선배들은 대령으로 군 생활 마치는 것보다 공무원 3급으로 시작하면 더 큰길이 보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하였다 ,

사회 진출 후의 경쟁력도 육사졸업한 본인의 기본 실력을 믿어야 할 것이고, 당시만 해도 육사출신 선배들이 사회 곳곳에 기라성처럼 존재하고 있어서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이니, 같은 육사출신끼리도 피 터지게  경쟁하는 군보다는 공무원 쪽으로 나가는 것이 본인의 앞날에 유리할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중대장은 며칠 더 고민하더니 전역 지원서를 냈다.  

이 분도 아마 자신의 동기들에 비해서는  고생길인 우리 사단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지원하더라도 군에 꼭 필요한 자원이거나 특수 교육등을 받았던 대위들은 제외된다고 하였다. 심사를 거친 후에 전역이 확정되어 그분은 곧바로 사회로 나갔는데 여러 달 후 사회인이 되어 우리 중대를 찾아왔다. 아직 공무원 업무나 그 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라고 했으나 표정은 중대장으로 있을 때보다 무척 밝았다. 그 후는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 중대장이 전역 후 공무원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인을 공무원 3급으로 채용한다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엄청난 특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기가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가려할 때, 또 새로운 여정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듯한데 아리송할 경우 자신에게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더구나 그들이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찾아준다는 것은  큰 복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부하였던 전임 소대장들에게 진지하게 자문을 받는 모습은 평소에 주변 인맥을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나에게 조금 인식시켜 주었던 것 같다. 내 선배 소대장들도 사회 초년생들이라 자기 일에도 한창 바쁠 텐데 멀리 떨어진 군대에 다시 와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중대장과 같이 근무할 때 사이가 아주 좋았던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