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군대는 진짜 성인이 되는 곳
위대한 성인들이나 철학자들이 강조하는 격언 중에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고 집중하라는 말이 있다.
과거나 미래를 무시하라는 말은 당연히 아닐 터이지만 과거를 잊지는 말고, 미래의 계획도 세워 놓았으면 품고 있으되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 격언이 피부로 와닿았던 때가 군 복무 중일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의 경우를 보면 과거 일을 회상할 여유도 없었고 미래를 그려볼 시간도 없었다. 오로지 오늘 하루 탈 없이 지내는 것이 최우선과제였으니 말이다
나의 지나온 생애롤 돌아보니 나에게 사회를 본격적으로 알게 해 준 곳이 바로 군이었다. 말하자면 거의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사회는 어린아이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야' 하는 개념을 확실하게 심어준 곳이고 본격적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맛을 보여준 곳이다,
그 시절은 나에게았어서 장기간 집을 떠나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2년 동안 같이 먹고 자고 어깨를 부딪치며 생활했던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간이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는 나같이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 온 사람보다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온 병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당시 전방 예비사단에 소속되어 있던 우리 대대는 대학 다니다가 입대한 병사들이 드물었다.
당시는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으며 그나마 대학 다니다가 군에 들어온 병사들은 거의 최전방 부대로 배치받는 것 같았다
우리 중대에는 대학물 먹어본 병사가 3, 4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들어온 것이다.
군에 오기 전에 이미 사회생활, 직장 생활을 하다 온 병사들을 통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사회와 직업의 이면도 많이 알게 되었다.
며칠간만 같이 있게 되는 환경이라면 철저히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길 수 있겠지만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감추려 했던 동료들의 비밀도 많이 알게 된다. 당시 병사들의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일반사회 같으면 드러내지 않았을 많은 사연들이 군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서서히 본인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 내가 경험한 군대 생활이었다.
사회에서라면 창피해서, 혹은 알려지면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을 사연들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사회에서 행했던 못된 일들이 그런 범주에 든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예전처럼 선임자들이 후임자들을 마구 닦달하여 감추고 싶은 것을 억지로 말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군대니까 지금도 어느 정도는 예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보병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면 당시는 소대에 40여 명, 중대에 거의 200명 가까운 인원이 있었기 때문에 군 입대 전 다양한 직종에서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다가 군에 왔는지 대충 알게 된다.
우리 부대에도 평범한 직업 말고 폭력배. 예술가, 경마장 기수, 원양선원, 철학관에서 일하다 온 병사등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또 군 복무 중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군인들도 나오기 때문에 그런 일을 목격하다 보면 '지금 군대에 와있구나' 하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며 죽음에 대한 개념도 보다 현실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나는 중학 2년 때 집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갔지만 부모 따라 전학 가지 않고 중고교 기간 5년이나 서울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부모와 떨어져 생활했었다.
학창 시절 5년간이나 집에서 떠나 있었던 것은 비록 남들이 일반적으론 경험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그 절반밖에 안 되는 군대 생활 28개월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런 학창 시절 5년과는 비교가 안되게 내가 곧 사회라는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곳이기도 하다.
8. 사주팔자
소대장으로 부임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소대원들이 우리 소대 전령이 사주를 잘 본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원래 그런 걸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많은 소대원들이 그에게 이미 사주를 보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생겨서 재미로 나의 사주를 보아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관심이 없다 보니 음력 생일을 모르고 양력 생일까지만 아는데, 그때까지도 내가 태어난 시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시가 제일 중요하다며 자기는 시를 알아야 사주를 정확하게 풀 수 있다 하였다.
할 수 없이 몇 달 후 첫 휴가 때 어머니로부터 내가 태어난 시를 알아내어 휴가 복귀 후 다시 그와 마주 앉았다.
그가 푼 나의 기본 사주에 나는 내심 크게 놀랐다. 그것은 내가 집에서 떨어져 지낼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해석이었다. 중고교 5년을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는 것을 부대에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나의 운명에 그런 부분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았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한 가지 직종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직업을 갖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사무실에 계속 앉아있는 직업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당시 애인이 있었는데 보는 김에 애인의 생년월일도 같이 가져와서 물었더니 나보다는 애인의 사주가 훨씬 좋으니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제대하고 직장 잡으면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이라서 그 부분은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당시 소대원들도 이 친구가 옛날 지나간 사항은 잘 맞추는데 미래에 대한 것은 예측일 뿐이지 확실한지는 때가 되어야 알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도 그런 부류라서 그때의 사주풀이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제대 후 8년쯤 뒤 직장 동료와 퇴근하는데 그가 길거리에 좌판을 벌이고 있던 사주쟁이를 보더니 사주를 한 번 보겠다고 해서 그가 사주를 본 다음 나도 1,000원 내고 사주를 보았다. 사주쟁이는 술값만 받는다고 했다. 비록 1,000원짜리였지만 색연필로 서너 장 써 주었는데 필체도 보통은 넘었다. 그가 써준 것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후 또 10년쯤 지난 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던 철학관 도사와 친해졌는데 여느 날 너무 심심해서 정식으로 10,000원 내고 사주를 보았다. 그 밖에도 재미로 PC에서 사주팔자를 몇 번 프린터로 뽑아 본 기억이 있다.
항상 재미로 보아온 것이라서 보고 나서는 대충 내용을 잊어버렸는데 몇 년 전에 갑자기 '여태 몇 번 보아왔던 사주풀이가 맞았나?"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사주풀이 종이들을 뒤적여보니 거의 맞는 게 없었다.
그러나 군에 있을 때 사주 보아준 가장 오래된 전령의 풀이가 거의 맞아떨어졌다. 나는 그의 사주풀이를 그때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생각해 보니 남보다 회사를 많이 옮겨 다녔으며 회사에 발령받고 나서도 자회사의 요청에 의해서 타의로 몇 번이나 자회사로 옮겨야 했다.
맡은 업무도 자리에 앉아서 하는 업무가 아닌 계속 돌아다니는 업무였다.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회사의 명령이 그러했고 그런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회사를 옮겨도 비슷한 사태가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성격을 죽이고 어느 한 군데 정착했으면 결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떠난 다음에 나의 후임이 크게 잘된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전령의 다른 예측, 군 시절의 애인은 지금 집에 마님으로 군림하고 있다.
'자기가 없었으면 사업한답시고 몇 번 말아먹은 나는 오래전에 서울역 노숙자 무리가운데 터 잡고 앉아있을 것이다'라면서.
그런 때문인지 주역이나 풍수지리, 별자리 점 등에 관심이 생겨서 초보적인 책을 몇 권씩 읽었는데 인간의 운명은 사주에 정해져 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한다. 경험을 했으니까....
그러나 나의 경우에서 보듯이 같은 사주를 가지고도 해석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답을 내놓으니 좋은 사주쟁이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 하겠다.
군에 있을 때의 소대 전령은 나보다 몇 살 어렸지만 눈치가 빨랐고 이 일 이외에도 사회생활의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였다.
제대하기 전에 그의 연락처를 챙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었고 이사도 자주 하던 때라서 특별히 관리하지 않으면 계속 연락을 유지하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혹시 지금 어디서 철학관을 하고 있나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한번 만나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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