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에 박정희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1962년경에 가나안 농군학교 초창기에 방문한 걸로 추정된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주도한 한국의 대표적인 농촌 현대화 운동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근로·봉사·희생정신이 그 원형으로 평가되며, 근면·자조·협동을 3대 원리로 삼았다
사례 1. 공공건물의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의 하나가 손을 씻고 나서 종이타월을 뽑아서 손을 닦는데 한 장만 뽑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2-3장을 뽑아서 대충 손을 닦고는 버린다. 초등생 정도되는 아이들은 심지어 4-5장 뽑아서 쓴 경우도 종종 본다. 대개의 화장실에는 1장씩만 뽑아 쓰세요 하는 표어가 붙어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한 장만 써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족해 졌는데 무어 그런 것을 탓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기본적인 예절교육조차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하지 않은지가 제법 된 것 같다.
사례 2
내가 대학 1학년 때 학교 안에 있던 학군단의 단장(대령)이 저녁때 퇴근하면서 잔디밭에 널려있는 담배꽁초를 주으며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 나아가야 될 대학생들이 이렇게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리면 안 되는데' 말씀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진디밭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데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니 그 꽁초들이 때때로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새벽에 청소부들이 청소를 하겠지만 대학교 안에 지성인들이라는 학생들이 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을 보고 자기라도 치워야겠다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리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6.25 참전 용사로 대학을 다니지 못한 분이었다고 한다. 자기보다 지식이나 예절 수준이 더 높아야 할 학생들의 행태를 보고 나라 앞날을 걱정한 것일 게다.
나이가 들면 비슷한 걱정을 하게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경제상황은 내가 학생일 때와 비교해서 정말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서 사회 예절이나 남을 배려하는 그런 정신적인 수준은 오히려 예전보다 퇴보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득 가나안 농군학교가 생각났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국내 활동은 많이 줄었고 해외 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기록을 보면 '가나안 농군학교는 개신교 장로인 김용기(1909년-1988년)가 "한 손에는 성서를, 한 손에는 괭이를"이라는 신념에 따라 1962년에 설립한 기독교 합숙교육기관이다. 교육과 노동을 통한 의식교육이 특징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교육기관으로 초창기에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교육의 원형을 제공하였다.'라고 나와있다.
박대통령도 농군학교 방문에서 영감을 받아 기억하고 있다가 1970년들어서 새마을 운동을 시작한 걸로 되어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세대 포함해서 윗세대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준 기관이었다.
지금의 장년들조차도 가나안 농군학교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1970년대와 80년대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간부 사원들이 2박 3일의 일정으로 하남에 있던 그 학교에 가서 합숙 교육받고 오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었다. (나는 몰랐지만 6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80년대 초에 나는 일반 사원이라 교육받는데 낄 군번이 아니었지만 다녀온 분들의 일관된 말씀은 새벽에 일어나면 일열로 줄 서서 치약은 손톱의 찌꺼기만큼 짜주는 걸 받아 양치하고 세수할 때 비누는 손으로 두 번만 문지르게 하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사정이 치약이나 비누를 그런 정도로 아껴야 될 상황은 아니었는데 절약하는 삶의 원형을 그런 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교육은 근검 절약과 노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었는데 거기서 일하시는 김용기장로의 가족들 모두 부지런하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하고 과정이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잘 다녀온 것 같다고 말씀들을 하셨다.
김장로는 나중에는 농촌 지도자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육성하려고 '가나안 농군 사관학교'까지 만들었다.
나라를 지키는 3군인, 육군, 공군, 해군에 더해서 농촌 재건의 사명을 받은 농군이 4번째 군이 되어야 한다는 김장로의 소신이었던 것 같다.
2박 3일 교육을 회사 전체 인원이 갔다 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간부 사원들이 갔다 온 후 회장님의 지시로 당시 농군학교 2대 교장이던 김종일 씨를 회사로 불러서 전 직원이 청강하는 강의를 열었는데 40년도 훨씬 더 전이지만 그때 그분의 모습이 아직 생각난다. 그분은 개량 한복 비슷한 복장을 하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오셨다.
농군학교에서도 계속 정신 교육을 해와서 그런지 강의를 알차고 재미있게 했고 상당한 유머를 뽐냈다.
서두로 꺼낸 말씀이 '구두 살 돈이 없느냐? 왜 검정 고무신을 신느냐'하는 이야기를 강의할 때마다 질문받아서 미리 그것에 대해 답을 준다고 하셨다.
아버지(김용기 장로)가 이걸 그의 외부 강의시의 기본 복장으로 정해주셨다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야 무얼 입어도 상관없지만 외부 강의 나갈 때는 양복에 구두 신고 가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고 김동길 교수의 말투를 흉내 내며 " 이게 멉니까? 아버지 김용기 장로야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있어서 어떤 복장을 하고 어디에 나타나건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지만, 아들인 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사람인데 아버지 잘 못 만나서 이 꼴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서 청중들의 폭소를 이끌어 내었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좋은 환경에서 이만큼 살게 된 데에는 이런 잊혀져가는 분들의 상당한 노력도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이런 노고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필 - 20 : 나의 군대 생활 6 (1) | 2026.04.18 |
|---|---|
| 수필 - 19 : 나의 군대 생활 5 (0) | 2026.04.07 |
| 수필 - 17 : 나의 군대 생활 4 (1) | 2026.03.25 |
| 수필 - 16 : 나의 군대 생활 3 (0) | 2026.03.14 |
| 수필 - 15 : 나의 군대 생활 2 (4) | 202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