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군 생활로 인해 얻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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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군대 일기를 마무리한다.
시간이 무척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사건들을 그동안 나열했었다.
복무 기간 중에는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섞여있겠지만 비록 그 기간은 보내기 힘들었더라도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얻은 자산을 간략히 펼쳐본다.
1. 금니를 덧씌우다
보병학교 16주 교육기간 중간에 어금니가 몹시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 중대 막사 뒤에 보병학교 의무동이 있었는데 입구 간판에 쓰여있는 진료과목을 살펴보니 다행히 치과도 있었다. 우리 구대(훈련소의 소대 개념)를 담당하는 구대장에게 이야기하니 일과 끝난 후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었다.
다행히 그날 의무장교가 퇴근하지 않고 있어서 치료를 받았는데 의무장교는 충치가 심하니 갈아내고 금으로 덮어씌워야 한다며 그날 충치 처치를 하고 어금니 본을 떴다.
하루 더 사전 치료를 받고 본이 완성되는 날을 알려주었는데 하필 일과 시간 중인 오전에 오라 하였다.
교육생이기 때문에 구대장의 허락을 받아서 교육을 빠지고 치료받고 있는데 구대장이 의무실 복도를 오가면서 나를 계속 부르는 것이다. 그가 중대장에게 보고했더니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나를 데려가려고 온 것이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계속 치료를 받았다. 의무실에 진료실이 여럿 있어서 내가 어느 방에 있는지도 모르니 의무실 문들을 함부로 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너 번 목 놓아 부르더니 결국 포기하고 그는 돌아갔다.
그리하여 군대에서 어금니에 금니를 덧씌웠는데 군에서 급히 조치한 것이니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무려 40년이나 탈 없이 견뎌주었다. 10년 전쯤 그 어금니가 다시 아파져서 민간 병원에서 그때 해 넣은 금니를 떼어내고 치료한 다음 새로 해 넣었다. 군의관이라고 민간 의사에 뒤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세금으로 금니를 했으니 나라에 제대로 빚을 진 셈이다.
2. 건강 습관
소대장 근무 중 첫해 겨울 사단에서 사단의 모든 소대장들을 소집해서 1박 2일의 집체교육을 시행했다. 사단장의 장시간 훈시도 있었고 수색대 시범도 보았으며 사단 기능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근본적인 목적은 소대장들도 병사들의 생활을 1박 2일 동안 경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단장의 지시였다고 한다. 1월의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사단 수색대 막사에 짐을 풀고 식사 후 식기 닦는 것, 밤에 불침번, 동초를 서는 것 등 일반 병사들이 하는 일과를 똑같이 시행했다.
내가 새벽 5시 마지막 동초를 서게 되었는데 동초는 막사 주위를 돌면서 경계를 서는 것이고 불침번은 막사 안에서 경계를 선다. 그날도 무척 추워서 방한복을 껴입고 막사를 도는데 어디서 물소리가 계속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세면장인데 그 시간에 불이 켜져 있었다.
기상시간은 6시인데 이 시간에 누가 무얼 하지하고 가까이 가서 창문으로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방한복을 입고도 추위를 느끼며 돌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세면장 안의 광경은 한 병사가 벌거벗은 채 바가지로 계속 찬물을 몸에 붓는 광경이었다. 세면장 사방에는 얼음이 두껍게 끼어 있었고 그가 서있는 부근만 물이 계속 흐르므로 얼음이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워낙 추우니 옆으로 튄 물은 조금 있다가 전부 얼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공식 노인이 된 후에 몸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을 깨닫고 이제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때 그 병사가 찬물 샤워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무실에 남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여 15분간 몸풀기 운동과 약간의 근력운동을 한 뒤 샤워기로 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시작했다.
겨울에 시작하면 힘들 테니 늦여름에 시작해서 지금 약 7년째 하고 있다. 냉수 수온을 계속 재고 있는데 사무실 냉수 온도는 여름에는 29도까지 올랐다가 한 겨울에는 12도까지 내려간다. 12도면 사실 상당히 차갑다. 한 겨울에는 매우 춥지만 그때 그 젊은 병사가 얼음 속에서 찬물 샤워하는 것을 본 장면이 떠오르면 그것에 비해서 약과라고 생각되었다.
다만 내가 추가한 것은 샤워를 마친 후에는 수건으로 몸을 닦지 않고 선풍기 바람으로 몸을 말린다.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은 사무실 온도가 15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조금 해보면 견딜만하다.
대중목욕탕에 가보면 목욕 마치고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 세밀하게 닦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목욕탕에서 물기를 닦을 때도 수건으로는 건성으로 대충 닦고 선풍기 바람으로 몸을 말린다.
이것이 나의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군에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실행할 수 있었던 귀한 자산이다.
3. 눈에 힘주기
내 기준으로 장태완 사단장은 그렇게 큰 키는 아닌 것 같은데 온몸이 단단하게 뭉쳐져 있었고 눈에서는 광채가 났다. 이 점이 좋아 보여서 전역 후에도 눈이 작은 나는 한동안 누구를 만날 때, 특히 면접 볼 때,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며 눈에 힘주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2차 오일쇼크로 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어서 전 역전 취업을 하지 못한 나는 제대 후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신문에 난 사원 모집 광고를 보고 계속 입사지원서를 써서 보냈다. 면접 보러 오라는 통보가 오면 면접관 앞에서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눈에 힘을 주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다행스럽게 직접 면접을 본 회사들마다 합격 통지를 해주어서 회사를 골라서 갈 수가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눈빛이 총기를 잃고 옛날로 돌아갔다. 지금은 거울을 보고 눈에 힘을 주어도 오히려 이상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다.
최근에 알게 된 정보로는 관상쟁이들도 관상을 볼 때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80-90%라는 것이다. 나같이 눈이 조금 작은 사람들은 눈에 힘을 주며 크게 뜨는 것이 유리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얼굴이 조금 강하게 생긴 사람들은 눈에 힘을 주면 너무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눈에 힘주는 것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4. 인연 이어가기
인연이란 묘하다. 보병학교 16주간같이 생활했던 같은 내무반 동기들은 지금도 일 년에 4번씩 만나고 있다. 보병학교에서 같이 훈련받았던 동기들이 2,000명 가까이 될 건데 내무반 동기들이 계속 만난다는 것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연대나 사단 동기들 모임은 흔한데 우리 사단의 보병 장교들은 워낙 시간이 없어서 연대는 고사하고 근처에 있는 다른 대대의 동기들 얼굴도 모른 채 복무를 마쳤다.
같은 대대에서 근무했던 동기 소대장들은 같이 고생을 해서 인연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제대 후 전부 연락이 끊어졌다. 인연이라는 것도 때로는 누군가 주동자가 나서서 연결을 해야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연이 될듯한 경우는 그냥 지나가고 안될 것 같은 경우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5. 마치며
지금 장교들이나 하사관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서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예전에 말단 소대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지만 많이 걱정되는 부분이다. 사회에 점점 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모든 걸 돈으로 따지는 시대가 되어가는데 군 조직에서 초급 간부 또한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다. 초급간부 자원이 부족하면 군 자체가 부실화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군 복무를 장교가 아닌 사병으로 갔다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는데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장교로 갔다 온 것이 지금도 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40여 명을 지휘하는 소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성격을 그때 많이 고친 것 같다. 중고교 다닐 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동창들은 내 성격이 활달하게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6.25 전쟁 휴전 부근에 태어나서 전쟁 없이 지내온 우리 세대는 큰 축복을 받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세계의 약 195개국 중 지난 200년 동안 약 160~175개국이 전쟁, 박해, 기근 또는 국가 붕괴로 인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난 시기를 적어도 한 번 이상 겪었다고 쓰여있는 기사를 보았는데 물론 우리나라도 그 안에 포함되지만, 6.25 이후는 그런 참혹한 일을 겪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기사에서 보듯이 전쟁은 예측할 수 없이 수시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군대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감수하는 군을 요즘같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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