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4개월의 군 복무 기간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통 남자들의 일생에서 군 복무기간이 가장 시간이 느리게 가는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제대 이후로 점차 시간이 빨리 가더니 지금은 1-2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그때는 복무 기간이 일반 병들보다 8개월이나 짧았지만 지금은 단기복무 장교들의 복무 기간이 병들보다 더 길어져서 장교 지원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학교교육을 마치고 바로 군대 생활을 시작한 나는 군에서 사회생활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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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신보안
신임 소대장으로 부대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지난 시점에 연대 보안대에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당시 보안대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왜 그러지?' 하면서 연대 보안대에 들어섰는데 평소 부대원들이 "김병장'이라고 부르던, 사복차림으로 가끔 부대를 드나들었던 친구가 하사 계급장을 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신 보안 위반으로 내 편지가 적발되었다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부대로 면회오라고 편지를 썼는데 우리 대대로 오는 길을 세세하게 설명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부대 위치를 노출시켰으니 통신보안 위반이라는 것이다. 대충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교육받아서 알고는 있었으나 초반에 부대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 그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편지부칠 때 봉투 뒤 발신인란에 단지 내 이름만 적었는데 그 편지가 김병장 손에 있는 것이었다.
당시 보안대가 의정부우체국에서 수발신되는 모든 편지를 검열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통신보안 위반 이야기를 듣자 적잖게 당황했지만 상대는 병이니 초임장교가 봐달라고 사정하기도 모양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인정할 거 인정하고 쿨하게 대응했다. 그런데 아 이놈이 '박소위님은 전혀 반성하지 않네요, 마치겠습니다.' 하고는 보안대장 대위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다.
곧 보안대장 대위가 나를 불렀다. '말 잘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을 이미 조사계가 의견을 냈으니 할 수없다. 끝났으니 돌아가라' 해서 부대로 돌아왔다.
군 생활을 조금만 오래 했어도 그때 보안대장에게 "몰라서 잘못을 했습니다.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주시지요" 하면 끝날 일을 입 꾹 다물고 있다가 견책 처분을 받게 되었다.
가장 낮은 처벌이지만 대대장에게 보고되어 불려 갔는데 대대장이 "이거 별거 아니니 일단 사단에 항소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군단에 또 상고해" 해서 일단 사단에 재심 신청을 넣었다.
얼마 있다가 사단에서 호출이 왔다. 가보니까 중령들이 8명인가 10명 앉아있었다. 사단의 참모들 같았다. 아마 사단 참모회의 중이었던 것 같았다. 중령 한분이 "장기복무야?" 묻길래 "아닙니다. 단기입니다."
" 장기 지원할 생각 없어. 좋은 데로 보직받을 수 있는데..." "생각 없습니다." 그들끼리 몇 마디 나누더니 "알았어. 끝났으니 돌아가"
본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쫒겨나왔다. 그냥 각하된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해 보니 우리 부대 사정이 너무 바빴고 군단까지 가 보아야 결과는 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서 포기했다.
그로부터 8개월 중위 진급시까지 중대 인사계(상사)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큰일인데요. 다른 동기분들 다 진급하는데 소대장님 혼자 소위 계속 달고 근무하다 제대하게 생겼네요" 물론 중대의 병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말 하지 않았지만 나를 놀려먹으려고 가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한대 패주고 싶은 생각이 불뚝불뚝 올라왔으나 나이로 따지면 나보다 10여 년 더 위인. 마흔이 다되어가는 큰 형님뻘 되는 사람이니 그러지는 못하고 속으로 끙하고 있었다.
설마설마하면서도 진급명령서 내려올 때까지 혹시 누락되면 창피해서 어쩌지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그때도 인사계가 가장 먼저 알려주며 끝까지 농담을 던졌다. "진급 안될 걸로 생각했는데 진급자명단에 이름이 있네요" 10년 묵은 체중이 한꺼번에 쑤욱 내려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이었었다.
이 사건도 사회 생활중 나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감을 안겨주었다.
문제가 되었던 편지는 결국 친구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4. 혹한기 훈련
1월 혹한기에 야외진지구축 훈련이 있었는데 그날 기온이 영하 10도 밑이라고 했다. 혹한기 훈련이니 당시 그 정도 추위에는 행군을 나서야 했는데 이번에는 5-6시간 행군 후 야외에서 진지를 만든 후에 하룻밤 진지에서 숙영하고 이튿날 부대로 복귀하는 훈련이었다. 다음날 돌아오는 것까지 해서 총 50킬로 정도의 행군으로 기억된다.
속옷에 방한복에, 조끼에 겨울 옷을 있는 대로 다 껴입고 완전군장하고 행군에 나섰다. 짊어진 배낭무게 때문이라도 조금 걷다 보면 몸에 온기가 돌아오기 마련인데 그날은 진짜 추운 날이었는지 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떨면서 행군하는데 행군 한 시간 정도 지난 즈음 소대 전령이 내 수통을 가져가더니 10여 분 뒤 다시 나에게 주며 이거 마시고 가면 춥지 않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소주 한병 분량이 수통에 들어있었다.
나는 원래 술도 약하고 소주는 더구나 마시지 않는데 전령은 내가 추워하는 모습을 보고 행군도중 길거리 가게에 슬쩍 들어가 소주를 사서 수통에 넣어 온 것이었다. 워낙 추우니 조금만 마실까 했는데 마시는데 그냥 맹물같이 느껴져서 걸어가면서 홀짝홀짝 다 마셔버렸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1병 마셨으면 비틀거렸을 것인데 너무 추운 날씨이다 보니 전혀 티도 나지 않고 행군에 지장이 없었으며, 추위도 싹 가셨다. 신기한 체험을 했다 할까?
술기운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실지로 체험했던 사건이다.
숙영지 야산에 도착해서는 3명씩 한 조를 이루어 3명이 들어갈 수 있는 1미터 깊이 이상의 구덩이를 팠는데. 이것이 우리의 진지인 것이다. 땅이 꽁꽁 얼어서 야전삽으로 20 -30센티 정도까지 파내는 데는 조금 힘들었으나. 그 밑으로는 땅이 물러서 쉽게 파낼 수 있었다. 파낸 구덩이 위를 텐트로 덮고 텐트 위를. 마른 나뭇가지나 흙 같은 것으로. 덮어서 진지인 것을 숨기고 그 속에서 하룻밤 지내는 훈련이다.
텐트로 위를 덮어서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바깥 날이 워낙 춥다 보니 계속 몸이 떨렸다. 밤이 되자 텐트 안이 더욱 추워졌는데 전령이 자그마한 잡목들을 태워만든 숯이 담긴 깡통화로를 가져왔다. 정말 손바닥보다 작은 조그마한 깡통화로였지만 제법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통조림 깡통 여러 개를 연결해서 굴뚝도 만들었고, 밖에서 연기가 보이지 않게 먼 곳에서 잡목들을 태워 완전히 숯으로 만든 다음 불을 붙여서 가져왔다.
그가 말하기를 연통이 없이 불을 피우면 자다 이산화탄소에 중독될 염려가 있다고 했다.
이것도 군에서 배운 산 지식이다,
다음 날에는 어제 파내었던 흙으로 구덩이를 다시 메우고 원상 복구 시키고 철수했다.
요즘은 야외에서 숙영 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보도를 가끔 본다. 연료를 태워 열을 얻을 때는 반드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분들일 것이다
당시 비록 작은 불씨였지만 추위를 상당히 물리칠 수 있는 좋은 난로였다고 지금도 기억한다.
이렇게 또 나중에라도 써먹을 수 있는 상식하나를 습득하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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