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의 '환단고기' 발언은 역사학계와 정치권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제주 4.3 사건의 고 박진경 대령의 유공자 자격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더니 이번에는 한국고대사 문제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발언 내용과 발언 수위들이 대통으로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못마땅하다.
퇴임 후에 훌륭했던 대통으로 기억되려면 국민을 분열시키지 말고 하나로 모으는 그런 발언을 해야 할 것인데 그의 많은 발언들은 계속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역사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정의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뒷말이 무성하게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언급한 발언들을 한 것 같아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러는지 걱정이 앞선다.
사회갈등을 봉합해야 할 대통이 자꾸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제주 4.3'에 대한 우파와 좌파의 가치관이 전혀 다르고 '환단고기' 역시 주류와 비주류 사학자들의 견해가 완전히 다르다.
제주 4.3은 지난번 "건국전쟁 2" 영화 시청 소감에서 밝혔기 때문에 이번에는 '환단고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조금 예민한 사건들을 대하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면, 우리는 바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인 사건들을 평가하는 관점조차 사람에 따라서 180도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이런 상반된 논쟁들이 기록으로 남아서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의 정확한 상을 파악하는 것에 큰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수 천년 전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이 '실제다 위작'이다 하는 논쟁은 일견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환단고기 논란에서 역사학계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재야 사학자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존재 여부일 것이다.
존재했었다면 어떤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었느냐의 문제인데 세상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이 지금 딱 떨어지는 답은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주류 사학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대 교수였던 '이병도(1896 -1989)'나 고대 교수였던 '신석호(1904-1981)'의 몇 세대 후배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원 스승의 학설을 계속 이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병도'나 '신석호'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위원장으로 주도하는 '조선사 편수회'의 위원으로 해방 때까지 봉직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사료를 연구, 검토할 수 있었지만 '식민사관', '친일'이라는 딱지가 그들을 계속 따라다녔다.
지금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그들의 행적은 그것들을 부인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의 후배 사학자들이 스승을 욕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도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도 든다.
이병도는 해방 후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후학들을 지도하고 길러냈는데 당시 한국 역사학계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조선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는데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 학생 때의 역사 교과서에 고조선 부분은 매우 짧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군조선 신화설에 영향을 받았는지 '왜 초등학교 교정에 신화 속의 인물 동상을 세웠느냐'라며 학교 교정에 세워둔 단군상 훼손 사건도 종종 있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역사서에서는 고조선을 기술한 분량이 15페이지나 된다고 하는데 근래의 중, 고등 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 기록이 반 페이지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재야 사학자들은 고조선 시대의 문명은 중국에 비해서 엄청나게 발달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고조선 시대의 대표적 유물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인돌'과 '다뉴세문경'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 8만 기 정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절반 이상이 있다고 한다. 만리장성 이남에는 1기도 없다니 그것으로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를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고인돌 상판의 무게가 50 -300톤까지 다양한데 이 300톤의 세계 최대의 상판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있다. 이처럼 무거운 상판을 올리려면 중장비가 없었던 그 당시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상당한 기술과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고인돌이 이런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몰랐었다.
상판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무게 중심을 잘 측정하여 올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멀쩡한 것을 보면 고조선의 기술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숭실대 박물관에 있는 국보 '다뉴세문경'은 현미경이 없었던 몇 천년 전에 그렇게 가느다란 엄청난 수의 무늬들(0.3mm 간격으로 선 1만 3천여 개를 새겨 넣었다)을 청동거울 속에 새겨 놓았는지 지금도 감탄하게 만든다. 그 기술을 복원하려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복원을 했지만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뛰어난 문화유물들이 많다고 하며 이것들은 동시대의 중국 고대 유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새로 발굴되는 유물들의 생성 연도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고조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지금 k-pop을 필두로 k-문화 융성기가 도래하고 있는데 k-문화의 범위를 우리의 옛날 유산으로까지 넓혀서 자랑스러운 우리 고대문화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K- 문화 속에 포함시켜 세계에 알려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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