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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영성

노자 - 12 : 含德之厚 比於赤子

含德之厚 比於赤子(함덕지후 비어적자): 품은 덕이 두터운 것은  비유하자면 갓난아이와 같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설날과 추석 하루 전날 식구들이 장남인 우리 집에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해왔다. 

2년 전부터는 우리 마나님이 음식 장만을 힘겨워해서 밖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후식과 다과를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장소도 우리 집만이 아니고 돌아가면서 만나고 있다. 

 

명절 하루 전날 만나는 것은 식당 예약이라든가 다른 가족들의 명절스케줄 조정이라 든가에 있어서 많은 이점이 있다.
올해도 어제 28일 가족 12명이 광명에 있는 아들집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아들집에서 차와 다과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모임이 조금 오래 기억될 만한 것이 며느리의 동생에게 4살 된 딸아이가 있는데 이 어린애가 우리 후식 모임에 놀러 왔다.
우리 모임중에는  가장 어린애가 내 손자로 중학 1학년 생인데 상당한 나이 차이가 나는 진짜 어린애가 들어서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애가 예쁘고 귀여운데다가 아들 집에 머물러있는 3시간 내내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니고 춤도 추고 재롱을 부리니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라서 아래층 집에는 소음도 상당히 났을 것인데 명절이라서 눈감아 주는 듯싶었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귀한 시절인데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내내 뛰어다니니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행사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쉬는 동안  노자가 어린아이를 언급한 것이 생각났다.  含德之厚 比於赤子도 그 하나다.

노자는 이상적 사회를 말할 때에는 항상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원시사회의 상태를 말하고, 이상적 인간을 말할 때에는 항상 지능이 아직 발달되지 못한 어린아이를 그 '모델'로 들어, 모든 인간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한다.
노자에서 어린 아이를 예찬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무심함, 유연함, 생명력 때문이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다.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부드러움에는 이러한 놀라운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적자(赤子)는 갓난아이를 일컫는다. 도와 덕을 어린아이에 비유한 문장은 도덕경에  여러 번 나온다.  

어린아이는 사물을 구분해서 인식하지 않고 통합적,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어린아이에게는 선악, 미추, 고저, 장단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사나운 맹수를 고양이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두려움이 없으니 맹수나 벌을 보아도 웃는 낯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해 팔을 뻗는다. 

현인 노자는 누구보다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그는 《도덕경> 여기저기에서 어린아이의 덕을 칭송하는 글을 남겼다. 
노자는 힘세고, 건장하며, 견고하고, 딱딱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는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무심하고, 순수한 것을 사랑한다. 
노자가 말하는 '어린아이(赤者)'란 도를 체득한 사람을 가리키는 하나의 비유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거나, 남녀의 교합을 알지 못해도 발기한다고 하는 문장도 어린아이의 부드럽고 유연한 신체적 특징을 도의 자연스러움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런 개념의 어린아이에 대해서는 예수도 복음서에서 말한 적이 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제18장"
기독교인들에게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 어린아이 개념은 예수교에서도 무척 중요한 개념이다.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린아이는 마음에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는 마음이 순수하여 남과 나를 구분하는 분리의식이 없고, 에고가 없기 때문에 사리사욕이 없으며, 언제나 자연스러운 무위 속에서 산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어린아이는 천국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그렇게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어린애도 차츰차츰 어린애의 티를 조금씩 벗어 던질 것을 생각하면 가는 세월이 

안타깝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