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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오감도Ⅱ >- 시 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 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아마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시가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이상 작품은 소설은 그런대로 읽을만 하지만 시는 정말 어렵다. 그나마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바로 이 시
<오감도Ⅱ- 시 제1호>이다.
묘하게 운을 타고 읽어내려갈 때 그래도 조금 어떤 형상이 떠오른다. 이상의 시 중에서 나에게는 유일하게 조금 친숙한 시이다.
소개할 책은 가수 조영남이 2010년 세상에 내놓은 이상의 시 해석집인데 도서관에서 이상에 대한 몇 편의 해설서를 대충 읽어보던 중 다른 작가들과 전혀 다른 톤으로 해설을 한 조영남의 책을 발견했다.
조영남이 만든 작품들은 그림이건 노래건, 책이건 우선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 털어서라도 가장 어려워 보이는 이상의 시 해설을 일생의 버킷리스트로 삼고 기어이 해냈다고 썼다. 이후로 기회가 되면 이상의 소설이나 그림 수필 등 다른 분야도 건드려보고 싶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려서인지 그렇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지만 이 책을 만드느라고 미세한 뇌경색 걸린 적이 있다고 방송에서 말한 적도 있다.
수많은 학자와 저자들이 27살에 요절한 이상의 작품들에 대한 해석을 해 왔는데 그의 시가 너무도 난해해서인지 조금 읽어보면 전부 다른 시각들을 가지고 있다.
조영남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문학 쪽의 전공자가 아니면 끝까지 읽기가 어려운데 조영남은 자연스럽게 자기의 주변 잡소리를 많이 섞어놓아서 이상의 시를 놓치더라도 그의 구라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몇 부분만 책에서 추려본다.
"바흐의 음악도 처음 들으면 어렵고 그 유명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도 처음 듣는 사람은 잘 모른다. 너무나 시끄럽고 복잡한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자꾸만 반복해 들어야 서서히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그 유명하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처음 들으면 간다는
소린지 온다는 소린지 구분조차 할 수 없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도 처음 보면 처녀 얼굴이 왜 저 모양인지, 저 그림이 왜 유명하다는 건지 짜증만 날 수 있다.
이상의 시도 마찬가지다. "
"이상의 시는 한 번쯤 짝 훑어봐야 한다. 이 시대의 경음악을 얘기하면서 서태지와 비틀즈를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상은 겨우 스물두 살 나이에 김소월 · 윤동주. 정지용 · 김기림을 훌쩍 뛰어넘는 「이상한 가역반응」 같은 극추상의 시를 썼다는 것,
그것도 세상에 처음 발표해보는 시를 최첨단 작품으로 포문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백 년 후에 시를 읽는 지금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
"우리가 잘 아는 김소월 · 윤동주 · 김기림 · 정지용 등은 누가 봐도 시를 탁월하게 잘 썼다.
하지만 그런 시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금껏 쭉 써온 시들이다.
그네들의 시는 전통적인 시들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탁월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보들레르 • 랭보 · 앨런 포 · 엘리엇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기나긴 문학의 전통으로부터 내려오는 일정한 형식 안에서 시를 썼다.
시의 형식을 좀더 세련되게 확장시킨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기존의 시 형식 안에서였다.
(이상은 남들이 써보지 않은 전혀 다른 종류의 시를 썼다.)"
"처음에는 주변의 시인들과 비교했다. 우리 주변에는 누구나 다 아는 김소월·윤동주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이 써놓은 시들은 애당초 김소월 · 윤동주 류의 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비교 대상이 아니다. 차원이나 수준이 한 단계 높다는 정지용이나 김기림을 갖다 대봐도 이상은 다른, 좋게 말해서 한 차원 더 높은 매우 모호한 시, 좋게 말해서 모던한 시를 썼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그래서 비교할 수가 없다. 내 판단이 그렇다."
"비교 대상은 시인 4명으로 좁혀졌다. 이름이 왕창 나 있는 시인들이다. 그들은 유럽 쪽의 보들레르와 랭보,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 엘리엇, 그리고 이상만큼이나 이상한 내용의 글을 썼다는 미국의 앨런 포다."
"이상이 시인이냐 소설가냐 하는 문제는 조영남이 가수냐 화가냐를 따지는 문제와는 사뭇 다르다. 이광수·조정래 · 최인호의 소설은 훌륭하다.
소설을 쓴 사람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존경심은 소설가보다는 시인 쪽으로 확연히 쏠린다.
시인한테 애착이 간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직업이 가수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가수는 소설에 곡조를 붙여 노래하기보단 시에 곡조를 붙여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숙명적 한통속이므로 시인과 가수는 친형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상은 요절한 시인이고 조영남은 장수한 음률 시인이다."
"이상 문학만큼 생생하게 빛나는 문학이 없다. 오늘날까지의 한국현대문학에서 이상 문학만큼 세계적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문학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영남은 한국의 모든 예술가를 통털어 이상을 단연 최고로 여기고 있다.
시간이 될 때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상의 시는 어려워도 조영남의 해설만으로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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