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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 3 :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버릇





20대 후반에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버릇을 가져야 되겠다고 마음속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 중동건설사업으로 급성장중인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40대 초반이었던 회장이 예고 없이 갑자기 각 부서 순시를 나왔다.

이 순시 1,2주 전쯤 전 직원이 모이는 조회시간에 ‘모든 사원들은 근무할 때 본인 책상에 지금 일하는데 꼭 필요한 한두 가지 서류나 용품만 내어놓고 나머지는 설합이나 캐비닛에 넣어두라’는 회장의 지시사항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갑작스런 순찰은 회계부부터 시작되었는데 회계부사원  20여 명 책상 위에는 부장 빼고는 전부 A4용지 반만 한 사이즈의 회계전표들을 산같이 쌓아놓고 작업하고 있었다.                                   
“깨끗이하라했는데 왜 이렇게 책상 위가 지저분해' 회장은 소리 지르며 부서원들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전표포함한 모든 물품들을 두 손으로 밀쳐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정말로 모든 부서원들의 책상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깨끗해졌다.  사무실 바닥이  온통 회계전표로 뒤덮여 버렸다. 회장 옆에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던 부장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옆 부서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본 우리들은 회장님 오시기 전에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물품들을 설합이나 캐비닛 속에 집어넣는다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다른 층의 부서들에도 이 사실이 금세 퍼져서 잠시뒤 회사의 수많은 책상들은 깨끗한 상태가 되었다.. 

사실 그때는 아직 사무 전산화가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회계전표를 그런 식으로 쌓아두고 처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는데 아마 본보기로 가장 복잡한 회계부를 선택한 것 같았다. 
회계부는 나중에 바닥에 흩어진 전표들이 원 주인들을 찾아가느라고 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회장의 의중은 일반적인 관행으로 일하던 회사의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바꾸어보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말단 사원이었던 나는 일상적인 경비지만 금액이 큰 지급결재서류를 가지고 결재라인의 결재를 직접 받아가며 마지막으로 회장실로 결재받으러 갔는데 정말로 회장님 책상 위에는 결재용 만년필 한 자루만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회장은 다시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으나 책상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역시 젊은 나이에 큰 회사의 회장이 된 그분은 무엇인가 보통사람과는 크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고.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하는 것을 '본받아야 되겠다'라고 생각은 했으나 그 회사 다닐 때만 지키는 척하고 회사를 옮기고 나서는 다시 옛날 습관으로 복귀했다. 

부친의 성격을 닮은 나는 원래 무사태평이다.  거기다가 모친의 아주 꼼꼼한 성격 또한 같이 물려받아서 어떤 일에 정신을 쏟게 되면 집중을 하는데 원래 게으른 사람이 꼼꼼한 성격도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중 제일 큰 것이 온갖 잡동사니들을 그때그때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널어놓아서 이제 어디서부터 손을 보아야 할지 모를 단계까지 왔다.  보통 나이가 들면 1년 동안 한 번도 손을 안 댄 물건은 없애버린다고 하는데 내 비품은 2-30년 지난 것도 수두룩하다.  며칠 전에도 30년 전에 샀던 '녹방제 윤활제'를 선풍기 분해 청소 시에 썼다. 

 

내가 말하는 게으른 사람이란 나중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처박아 두는 사람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막상 그 물건을 쓰려면 찾기도 힘든 지경이다.
생각만 계속하고 버릇을 고치지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보면 버릇을 바꾼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 같다. 

조금 웃기는 일은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내 주변은 온갖 잡동사니로 지저분한데 남들의 정리상태가 나와 비슷한 정도이면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지저분하게 하고 있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모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형의 사람이 나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대충 다 버려라' 하는 말을 쉽게 하고 있었다. 요즘은 그 모순이 나에게도 보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이제 나이도 들어가니 몸이 아프기 전에  '주변 잡동사니들을 정리해야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요즘 계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생 이어온 버릇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요새 다이소 같은 데서 값싸고 편리한 생활도구들을 계속 선보이고 있으니 지금도 자질구래한 물품들이 늘어만 간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우선 일주일에 한 번씩 몇 개씩이라도 서서히 정리를 시작하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서리라’ 다시 한번 작심해 본다. 
남들 보기에는 웃기는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진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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