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영성

노자 - 17 : 노자- 예수- 니체를 관통하는 단어 ㅡ 어린아이



근래 니체의 글 해설서를 읽다가 한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바로 '어린아이"라는 단어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인문, 문화, 철학 부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니체는 인간의 발달 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 처음 낙타의 심성에서 사자의 심성으로 변화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어린아이의 성질을 되찾음으로써 완성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낙타의 심성이란 무엇에나 복종하는 단계이고 사자의 심성이란 기존의 틀에 복종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을 뜻한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는 말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경 구절이지만 많은 신자들이 이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존재를 높게 평가한 최초의 발언은 노자의 '도덕경 '에서일 것이다.
노자는 예수보다 500년 전에 이 세상에 있었는데 그의 '도덕경' 여러 곳에서 어린아이를 아주 중요하게 언급했다.
도덕경 관련 구절들을 살펴본다.

專氣致柔(전기치유) : 能嬰兒乎(능영아호) :호흡을 부드럽고 평온하게 하여 능히 갓난아이처럼 할 수 있는가? 10장

復歸於嬰兒(복귀어영아) : 갓난아기로 돌아간다. 28장

聖人皆孩之(성인개해지) : 성인은 그들을 모두 아이처럼 되게 한다. 49장

含德之厚(함덕지후) : 比於赤子(비어적자) : 덕을 두텁게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갓난아이와 같다  55장

노자의 사상 중 핵심 하나가 약하고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것인데 갓난아이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노자는 인간 심성의 완성된 존재를 갓난아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은 위의 니체의 사상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노자의 이 사상이 특별한 것은 그 시절 유가를 비롯한 중국의 모든 학파들이 주장하는 바는 '아이는 잘 가르쳐서 성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자의 말은 아이를 가르치지 말라는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종교 및 철학사에 있어서 아주 특별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다 같이 어린아이를 아주 중요하게 언급하였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그러나 노자 시대뿐만 아니라 근세에 이르기까지 아이나 여자를 고유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가장의 재산이나 부속물로 생각해 왔는데 까마득한 그 옛날에 노자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놀랍고 이 사상을 예수가 확인헀고 니체도 확인하게 되었다.

인도의 구루 오쇼는 언급된 갓난아이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이까지로 보아야하는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대개 사람들은 3살 때부터의 기억을 일생 가지고 간다하며 그 이전의 상황은 거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데 갓난아이란 우리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했던 그 시절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정의에 따르자면 우리가 갓난아이의 성정을 되찾는다는 것은 허공의 뜬 구름 잡는 격이 될 수도 있겠다.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이들이 언급한 아이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고 , 모든 일에 대해서 편견이 없고,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외에 무언가 다른 면도 있을 것 같다. 노인이 아이가 될 수는 없으니 물리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노자의 도덕경, 예수의 말씀,  니체의 글들은 상징과 비유, 은유로 뒤덮여있어서 그 말의 본 뜻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읽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나는 일반적인 해설을 따라서 기술했지만 관련된 구절을 읽는 개개인들이 '어린아이'의 개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어찌 되었든 예수는 어린아이의 성정을 되찾지 못한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지 못한다는 엄청난 경고를 하였다. 

일생동안 부지런히 교회에 다녔어도 천국에 들지 못할 사람들이 엄청 많을 수 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어린아이의 성정을 되찾아야 할 일이 우리 앞에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해 본다.
물론 실행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도 모르지만 우리 마음 속에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 아주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