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知常容(지상용) 容乃公(용내공) : 영원한 것을 알게 되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진다 (치우침이 없다.)
Chat GPT에게 知常容의 해석을 부탁했다.
답. "知常容"은 『도덕경(道德經)』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이 구절은 노자(老子)의 철학 사상 중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자 하나하나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知(지): 알다, 깨닫다
常(상): 항상, 변하지 않는 것, 자연의 법칙(道)
容(용): 포용하다, 수용하다, 담다
따라서 **知常容(지상용)은 ‘도(道), 즉 자연의 변하지 않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포용할 줄 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Chat GPT도 常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준다. 한자사전에도 그렇게 나와있다.
다른 해석집에는 常을 ‘영원한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럼 ‘영원한 것’이란 무엇일까?
영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도덕경에서는 그것이 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도라는 것이 몇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뜻만은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라든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도덕경 해설서들에서는 영원을 Chat GPT와 같이 한결같음으로 해석했는데 나는 거꾸로 해석해 보려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한정된 공간과 시간이 주어져있고 또 예외 없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달리 말하면 이런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노자는 이 현상에 대해서
한마디 한 것 같다.
예전보다 세상이 험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느낌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노자가 살았던
그 당시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었던것 같다.
결국 인간은 쉽게 기본 본성이 바뀌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본 금언을 통해서 노자가 이런 말을 하려했다고 짐작한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항상 주의깊게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이라고.......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라는 이야기도 물론 성립이 되지만 본 금언에서 그런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서양과 달리 동양문화권에서는 예전부터 모든 것은 예외없이 변한다는 철학이 존재해 왔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예외 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어린아이에서 청년으로 바뀌거나 청년에서 노인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다만 우리는 매 순간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지속적으로 계속 일어나지만. 그 변화를 대부분 일상에서 세밀하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세상 만물은 하나의 흐름이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느끼는 것들도 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는 변화들이 훨씬 많다.
이러한 우리 삶의 수많은 변화들을 생활 속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하면서 깨달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을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이러한 행위가 매일 새로운 통찰력과 새로운 가치들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이런 자세는 우리가 이 행성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를 항상 예민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의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은 항상 젊음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진실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오늘 나에게 진실인 것이 내일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동물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며, 그저 나이를 먹을 뿐이나 이와 달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성장할 수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조건 지혜롭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연단하며 수행하지 않는다면 나이는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는 평생해야 한다..
항상 내 생각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는 이미 무너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며 이런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붓다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공부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면 심성이 너그러워지고 매사에 어느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다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나는 이구절을 해석하였다.
즉 이 금언에서의 도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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