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내 친구들보다는 내가 TV 보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평일에도 3-4시간은 보는 것 같은데 주로 밤에 늦게까지 보는 관계로 수면 시간이 짧아지는 큰 단점이 있다.
모 전문의가 쓴 글을 보니 TV를 습관적으로 오래 보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치매가 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다. 그런데 이 분이 이야기하는 것은 멍하니 수동적으로 TV를 보는 경우인 것 같았다.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보아야 하는 과학 프로라든가 점수가 수시로 바뀌는 긴박한 스포츠 경기 같은 것은 오히려 뇌를 더욱 활성화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시청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야구 경기는 잘 보지 않고 시간이 짧은 경기를 가끔 보며 전문가가 나와서 강의하고 질의 응답하는 프로그램들을 자주 보고 있다. 너무 어려운 주제가 아닌 조금 쉬운 주제들을 좋아한다. 찾아보면 각 방송국마다 특징 있는 프로들이 많은데 근래 '말자쇼'와 '이호선 상담소'를 자주 시청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두 프로는 뇌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프로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데 말자쇼는 가벼운 주제와 톡톡 튀는 유머로 방송 내내 웃음을 선사해 주는 코미디프로라면 이호선 상담소는 상당히 심각한 주제들로 주로 부부갈등 문제들을 다루는 것을 보았다. 이호선 프로와 유사 프로그램이 여럿 있는데 현재로서는 제일 마지막으로는 론칭한 프로라 그런지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고 느낀다.
'JTBC 사건반장'이 매일 상식적으로 이해되지않는 많은 사례들을 양적으로 많이 올리고 있으나 결론도 조금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물론 본질적으로는 두 프로가 다루는 문제들이 다른 유형이다) 이호선은 어쨌든 분쟁에 대해서 분명한 결론을 내고 있다. '이혼숙려 캠프'도 이호선 프로그램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은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어쩌다 보는데 내 기준으로 몰입도는 이호선이 낫다.
이호선 상담소는 일반 상식과 지식으로는 쉽게 풀지 못하는 어렵고 애매한 문제들을 그의 오랜 공부와 상담 경력들이 어우러져 처음에는 '저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지?' 하는 마음이 들지만 결론 부분에 가면 시원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어떤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여 몰입감도 높여준다. 사건들을 심층 분석을 통해 진지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류의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심증을 굳혀주는 계기도 된다. 예전에는 이런 사례들이 '어쩌다 만날 수 있는 예외적인 사건'이겠지하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사례들이 넘쳐나니 이제는 우리 사회가 정말 심하게 병들었나 하는 의구심이 커지게 된다. 부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회차가 더해지면서 지금 같은 매우 특별한 문제들이 아닌 일상적으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조금 가벼운 갈등들도 다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문 분야는 사실 어느 정도 시청률의 한계성이 존재한다. 이런 프로를 모든 사람이 볼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프로라고 생각된다. 이호선 프로도 발전을 계속하여 오랫동안 이어나가기를 기원한다.
다음으로 말자쇼를 들여다 보자. 우연한 기회에 채널을 돌리다 이 프로가 잡혔는데 결국 가요무대를 포기하고 이 프로를 보게 되었다. 진행자 김영희의 재치와 순발력으로 계속 웃음을 선사한다. 비록 가벼운 주제를 내걸고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답을 주며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이지만 '순발력'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진행자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계층의 방청객으로부터 자유자재로 질문을 받고 대답해 주는데 거의 대부분 웃음을 유발하는 답을 준다.
요즘은 방송중 짝 찾기를 수시로 진행하는데 방청석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순발력이 더욱 빛난다. 아마 이것 때문에 현장에서 방청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로 모른다. 가지고 있는 순발력을 기본자산으로 주제의 다양성을 계속 시도하다 보니 몇 달 후에는 조금 다른 포맷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져든다. 그러나 진행 방식이 바뀌더라도 웃음만은 잃지 않을 것이다.
보면서 계속 즐겁게 웃지만 때때로 웃기는 말뒤에 숨어있는 핵심을 찌르는 표현에 조금 놀라기도 한다. 책을 제법 읽었거나 주제에 대해서 심층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말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서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이 프로 역시 변화를 주면서 오래 진행되기를 기원한다.
오늘 두 사람의 방송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말자쇼는 대단히 가벼운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반해 이호선은 대단히 무거운 방식으로 진행한다.
'가벼움에는 무거음을 조금 더하고 무거운 프로는 조금 가벼움을 더하면 좋지않을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두 프로가 방향을 수정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겠지만 방향은 서서히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 두 프로 모두 장수프로그램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작년 12월 말에 '일론 머스크'가 '미래예측'이라는 주제로 전문패널 2명과 함께 3명이 3시간 가까이 토론한 것이 유튜브에 올라왔었다. 이런 딱딱한 주제를 3시간 가까이 한자리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의 눈길을 특별히 끄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토의와 더불어서 유머가 끊이지 않아서 3명은 내내 박장대소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들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머니까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토론 문화에 익숙하고, 또 항상 유머가 끊이지 않는 생활을 해왔기에 그런 장시간 토론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유쾌하게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부러웠다.
지금 우리 세대는 불과 10-20년 전까지만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화충격을 보고 있다. 항상 수입되는 것으로 알았던 문화가 우리 식으로 탈바꿈하여 거꾸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들까지도 지금의 기회를 잡아서 해외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이제는 우리의 미디어들도 유머와 진지함을 좀 더 조화롭게 잘 섞어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갈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